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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Ⅱ)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중화  2017-05-31 21:53:31, 조회 : 199, 추천 : 12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있는 그대로' 即하는 것.
너무나 평범하지만 명확한 진리. 이것을 깨닫고 확인하는데 참 많이도 돌아왔다.

3년 전 회사를 경영하다 일생 일대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었던 적이 있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에다 공장 이전 등 경영환경의 악화로 인하여 자칫 헤어나오지 못할 곤경이 있었다. 그 고비와 위기 속에서 겪었던 고통스런 나날들이 오히려 나에게는 신랄한 모멘텀을 가져오고 절절히 각성하고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주어 역설적으로 참 많은 것을 일깨워 주기도 했었다.
아직도 완전한 경영정상화로 회복 중이지만 (그때에 비하면 상전벽해로 나아진 상황임에도) 지금도 가끔씩 꾸게 되는 그 악몽은 식은 땀을 흘리게 한다.
이 땅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한다는 것, 그것도 몇 백억 대의 투자가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 제조업에서는(독보적인 첨단 기술과 시장이 갖춰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결정의 비장함 뒤에 그 risk가 상상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자기 자본이 적으면 적을수록 all or nothing이어서 늘 백척간두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경영자의 의지와 노력 외에 대내외적으로 여러 환경 요소에 기업의 성패가 좌우되므로 모든 일에 노심초사하고 신중할 수 밖에 없어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사람이 (그대 앞에 서지 않더라도) ‘작아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고, 낮추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잘 나가거나 어려울 때를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 지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
이것은 무슨 특정한 일을 도모하여 성취하고자 하거나, 부분적으로 특별하게 오만하고 교만했던 것에 대한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으로서가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기 덕목으로 정말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이 사무치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그 일이 이뤄지기까지에는 그야말로 온 우주의 기운이 미치어 작용하기 때문인데, 그 보이지 않는 수 많은 기운들 속에서 본인 각자의 의지나 작위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해서 무엇을 작정하고 이루고자 한다면 본인이 죽기살기로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한 전제이고 한 점 불순하고 나태한 생각 없이 純一해야 하는 것이다.

그 힘들었던 시절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 그렇게 되어버린 여건과 처지가 우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 경영이 악화일로를 치달아 한 방에 훅 가게 생겨버린 이 상황이 마치 내가 한 동안 다른 곳에서 다른 일하다가 불현듯 이 자리로 온 것처럼 생경하기 그지 없었고 그래서 수긍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관리팀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경영 현황보고는 다 그럴만한 이유와 원인으로 분석 보고되곤 했었지만, 그럼에도 속절없이 여러 상황과 조건들이 호전되지 못하고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었고 사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요건들이 도저히 충족되지 않아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매출은 매번 BEP(Break Even Point)를 회복하지 못하고 한참을 밑돌아 적자 구조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온 사방에서 추가로 빌어 온 운영자금이 하루가 다르게 5, 6월 뙤약볕 가뭄에 메말라 가는 논바닥처럼 바닥을 드러내면서 목줄을 죄어 오곤 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각종 악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눈만 뜨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곤 했었다.
분명 연속된 나날들인 그 하루하루에 전개되는 상황들이 며칠을 지나고 몇 달을 거치면서 전혀 낯선 상황으로 곤두박질치곤 하였는데 '무너져가고 있었다'라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  마치 뜨거운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그 때서야 수 많은 회한과 한탄이 밀물처럼 밀려왔고, 내 의지와 판단은 뒤죽박죽 혼돈되어 운영과정이나 상태를 통제해 보기는커녕 두 손 놓고 허공만 바라보며 상황에 완전히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해와 수긍이 되지 않았고, 이해와 수긍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갈 때까지 갔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필연이라고 하는 과정들이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노라'라고 스스로 이해가 된다면 숨통이 좀 틔어질 듯할텐데, 즉 무엇보다 이 상황을 초래하게 된 전ㆍ후의 과정들이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된다면 그래서 ‘아하 어찌어찌 하여 이렇게 되었고 이게 다시 여차저차 해서 저렇게 되었구나. 어쩔 수 없이 결국은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없었구나’하고 마음을 비울 텐데...
물론 그것이 즉각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나'를 가운데에 끼워 놓고 남(주변, 환경, 他者 등) 탓만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만 그 만큼 버리고 비우는 것이 하늘만큼이나 至難한 일인 것이다.

완전 바닥까지 내려가게 되고 보면, 일단은 자기보호 내지는 심리적인 자가치료라고 할 수 있겠고 아니면 (내 스스로 살아 남기 위한 본능으로)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잃고 놓는다 하더라도 자존은 회복하자는 일종의 자기합리화가 발동하게 된다. 즉, 심적인 터닝포인트라고나 할까

사실 佛家에서 늘 얘기하듯이,
‘경계가 정말 빡세게 들이닥쳐 심기일전(心機一轉)할 여유 조차 없다 하더라도 다만 오롯이 한 점 물듦이 없이… 경계에 머물지 말고 다만 평정심을 유지...’
...하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그러나 그 때는 관념과 실행이라는 면에서 전혀 차원이 다른 현격(懸隔)이었고, '수 없이 수행을 거듭하여 실체화된 무염(無染)'이 되지 못한 비단 위의 상상이며 머릿속에서만 울려 퍼지는 공염불이었다.
‘나’를 없애지 못하고 경계에 휘둘리지 않고자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고 우매함의 극치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알음알이의 시비분별을 함이 없이 觀하여 定함을 어긋나지 않게 實답게 行하는 것이 평생의 숙제인데 어찌 그리 쉽게 無礙自在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 속 비참한 밑바닥까지 처절하게 확인한 후, 손 안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다 놓아버리고(누구나 그렇게 되듯이) 나는 긍정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내 마음이(내 생활이 아니라) 본래 자리를 찾아가 살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때 옛날부터 피상적인 알음알이로만 알아 왔었던 ‘인연법'을 다시 한 번 절절하게 확인한다.
‘五蘊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인연 따라 생기고 유지되다가 인연 따라 흩어진다. 모든 현상은 한량없는 인연과 더불어 일어나고 한량없는 인연 따라 소멸하므로 고정된 경계도 없고 틀도 없으며 이것이다라고 할 모양도 없다.
또한 인연의 생성과 소멸은 거의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작용하고 그 현상 또한 帝網刹海, 重重無盡하여 그 織造에 한 틈조차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세상에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주위와의 인연에 의해 모든 조건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딱 맞아야 하며 모든 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관하는 것이다.
자기보호 내지는 심리적인 자가치료도 아니고 내 스스로 살아 남기 위한 본능으로 자존을 회복하자는 자기합리화도 더욱 아니다.
이 우주 만물은 내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돌아가듯이 늘 '있는 그대로'이므로 여기에 어떤 헛된 미련과 망상을 더하지 않는다.
바뀐 것은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즉(即)하여 휘둘리지 않고자 할 뿐이고, 끝까지 겸허할 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肯定과 首肯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관하는 것이다.


수인
'있는 그대로'?

주관의 개입이 없는 '있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나에 의해 분별된 후의 '있는 그대로'인가?

전자는 일상적 의미의 인식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라고 할 수 없을 터이고,
후자는 나의 해석을 거쳤기 때문에 이미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과연 어디에 그대의 의자를 놓으려는가?
2017-06-01
05:57:45

 


해설
중화의 글이 올라왔네. 그러고보니 오늘이 말일이네.

3년 전에 상황이 그렇게 어려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다컴 주민을 대할 때나 수행함에 있어서 한결같았던 중화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겸손하라" : 중화와는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나도 겸손이 중요함을 느낍니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비록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도 나름의 타당성이 있죠. 그래서 나만 옳고 나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오만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하라". 이런 태도도 겸손이라 할 수 있겠지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라" : 마찬가지로 중화와는 다른 맥락의 얘기인데,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천명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내 할 일을 다했는지 다 하지 못했는지에 관계없이 그렇다고 봅니다. 속 편히 산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내 자신을 다그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2017-06-01
06:05:18

 


해설
오오! 수인께서는 일찍도 일어나셨습니다.

"있는 그대로"에 대한 수인의 문제제기에 수긍합니다. "있는 그대로"는 칸트식으로 얘기하자면, "물자체"이므로 인간이 인식할 수는 없고, 결국은 나의 해석이 가해진 것이겠지요.

중화의 글쓴 의도에 따른다면 '있는 그대로"를 "일어난 일을"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요?.
2017-06-01
06:21:23

 


수인
불교 수행론의 핵심은 "중생의 업식이 간여하지 않은," 즉, 생각의 오염이 없는, 無分別知(智)다. 무분별지로 인해 "있는 그대로"를 관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래서 생각을 쉬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2017-06-01
09:43:12

 


수인
중화의 본문이나 해설의 해설적 댓글이 모두 요즘 내 생각과 어슷비슷하다. 늙으면 다 비숫해지나. 말하자면, "모든 상황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물론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이미 발생한 일은 그 나름의 필연적 과정이 있고, 그것이 이미 발생했으면 곱게, 편하게,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것은 일이 발생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운명에 돌리는 숙명론과는 또 다르다. 나름 노력하되(盡人事) 결과에 순응하는(待天命) 지혜다. 늙으면 지혜가 거저 생기나보다 ^^ 2017-06-01
09: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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