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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의 힘으로 고통을 잊어버린 이야기 / 보문스님
白下  2017-05-12 00:07:43, 조회 : 156, 추천 : 6
보문선사(1906-1956)께서 폐병에 걸리셨을 때였다.

이제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러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을 위해서 마취를 해야 했으나, 선사께서는 마취없이 수술을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의 말을 전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내 표정이나 몸가짐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잘 살펴보고 나중에 그대로 일러주기 바란다."

수술을 하면서 갈비뼈 세개를 도려내야 했는데, 첫 번째 갈비뼈를 도려낼 때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다 멈추었다.

두 번째 갈비뼈를 도려낼 때는 눈살을 찌푸리고 약간 뒤트는듯 하다가 멈췄다.

세 번째 갈비뼈를 도려낼 때는 '으 음' 하고 신음소리를 가느다랗게 내었다.

선사께서는 뒤에 이 사실을 듣고 깊이 탄식했다고 한다.

"내 공부가 기껏 이 정도인가. 물러나도 한참 물러났군!"




역사적으로 생존했지만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비(碑)나 부도조차 세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제자에게 받고 떠나가신 선지식이 있다.

전설로만 남은 스님, 바로 보문스님이다.

보문현로(普門玄路)스님은 세속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그분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진한 그리움으로 살아있는 분이다.

한암(漢岩,1876-1951) 스님의 비명(碑銘)에서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님(한암)의 법을 얻은 제자가 몇 사람 있었으나 오직 보문(普門)과 난암이 지행(志行)이 초절(超絶)하여 자못 종풍을 떨쳤으나 보문은 불행히도 일찍이 별세하였다.




보문스님은 경북 상주 출생, 속명은 기옥(奇玉), 점잖은 스님이 상에 구슬을 놓고 어머니 앞에 절을 하는 꿈이 태몽이었다.

그래서 속명이 기옥인 듯 하다. 당시 풍습에 따라 일찍 결혼하였다.

아들 들을 낳았다. 집안의 반대로 몰래 출가했다. 이때 이미 30이 넘었다.

장삼을 입자마자 밤을 세우며 정진했다.

한암스님이 '잠 좀 자면서 공부해라'고 하면, '예, 잠이 안옵니다'라는 대화를 하룻밤에도 몇 번이나 했다.

수계를 하자마자 한암스님이 중대(中臺, 적멸보궁)로 보냈다.

이때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이 보문스님 소문을 듣고 시험을 했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참배객마다 열고 닫는다니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소?"

보문스님은 "꽃 떨어지는 삼월 청산 속에 두견새 소리에 열고 닫기를 맡깁니다" 라고 대답했다.

경봉스님은 이렇게 평했다.

"왕대밭에 왕대 났다."




한암스님 생신 때였다.

국수, 튀각 등으로 대중이 공양하였는데, 스님이 된지 1년밖에 안된 보문스님이 앞으로 나가 한암스님께 절하면서 여쭈었다.

"스님, 오늘 스님 탄생하셨으니, 어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루는 서울에서 큰 손님이 온다고 월정사에서 기별이 왔다.

한암스님이 직접 영접하지는 못하겠지만, 관대걸이까지는 누구를 내려 보내서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한암스님은 보문스님을 보냈다.

보문스님이 내려간 지 얼마 안 되어 큰 손님 일행이 상원사에 도착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를 지난 뒤 보문스님이 돌아와서 한암스님께 말했다.

"스님, 큰 손님이 오신다더니 안 오시던데요."

알고 보니 보문스님은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되어서 어깨를 지나치고도 손님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설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공부의 깊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선정에 들어 고통을 잊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냥 생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좋고, 그것이 힘들면 마취제를 쓰는 것도 좋다.
2017-05-13
01:49:47

 


수인
"선정의 힘으로 고통을 잊다"는 건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선정에 든다면 그 선정은 마취제보다 못한 테크닉일 뿐이다. 문제는 心力으로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한 자"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 때문에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든가 더 알아보고 말을 하면 좋겠다. 2017-05-13
11:05:12

 


수인
"부드러운 마음으로" 아래 댓글을 수정한 김에 위의 댓글도 고치려고 봤더니 별로 고칠 데가 없다. 언젠가 해설이 비판에 대해 열린 자세를 표명한 적이 있고, 또 자신이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견해를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心力으로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는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요렇게 수정한다: "자신의 감각과 의식에 지배당하지 않는 心力(혹은 삼매력)을 기르는 것이다." 2017-05-13
20: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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