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컴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물우에쓰다 | 나룻배



Coming out
수인  2017-06-04 11:30:39, 조회 : 120, 추천 : 7
- Download #1 : 명호면.jpg (479.5 KB), Download : 0

봉화군 명호면 면소재지에 있는 화장실 잠언

===============


용하다는 점쟁이나 역술가들에게 묻는 -간접화법으로- 질문이 있다: “그렇게 용하다면서 자기는 왜 그 모양 그 꼴로 살아?” 대개 역술가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내 사주팔자를 봤더니 요것밖에 안됩디다....” 내가 그들을 下視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난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이 애초에 정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신이다) 역술을 잘 하는 사람들도 변화의 가능성은 열어둔다. 四柱八字 여덟 글자는 囚人 번호처럼 정해져 있지만, 그 운용(通辯이라든가?)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역술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열에 예닐곱은 팔자에 정해진 수순을 밟고 살아가는가? 그것은 “알고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군자까지는 몰라도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나 노인은 거의 없다. 단지 자신의 반응 방식(習)을 바꾸지 못할 뿐이다.

나 역시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내가 불교에 대해 ‘아는 소리’ 좀 하고 있으니 한 소식은 아니더라도 반 소식 정도는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언젠가 해설도 농담삼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부터 바로잡기 바란다. 군대에 가면 누구나 讀圖法을 배운다. 지도(圖)를 판독(讀)하는 방법(法)이다. 독도법을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다. 내게 불교는 인생의 독도법 같은 것이다. 불교는 내게 삶이 어떤 것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그걸 알게 된 나는 運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불교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까지 활용해본 바로는 하자가 없기 때문에 제한적인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불교는 인생에 대한 나의 거대한 의문을 해소해주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한 지식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가령, 대부분의 승려나 불교학자들처럼 그 지식을 이용해서 밥벌이를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지식을 적용해서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불교도 閑士의 閑談에 불과한 것이다. 25000분의 1 지도를 소지한 독도법 도사라도 몸소 걸어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독도법이 무슨 소용인가.

인류가 필요로 하는 모든 “위대한 말씀,” “진리의 말씀”은 이미 기원전에 다 나왔다. 그 이후에 세상에 넘쳐나는 “말씀”들은 모두 옛 버전의 부연이거나 변형, 아니면 주석에 불과하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智力과 知量을 막론하고 모든 工夫人들은 이미 자신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소위 “道를 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절대로 만족하는 법이 없이 과도하게 지식을 갈구하는 경향이 있다. 禪問答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자신의 無明을 一擧에 뚫어줄 頂門一鍼의 한 마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공기가 빵빵하게 차 있지 않고 축 늘어져 있는 고무풍선은 바늘로 찔러도 바늘구멍은 날지언정 빵 터지지 않는 것과 같다. 實參과 實修를 통해 자신이 아는 바를 삶속에서 구현하는 자(즉 준비된 자)가 아니면 어떤 훌륭한 말씀도 말(馬)의 귓전을 스치는 봄바람과 같다. 그래서 또 말한다: “자기가 아는 만큼만 살면 즉각 聖賢이 된다.”

* 나에 대한 巷間(?)의 의구심과 오해를 풀기 위해 coming out한 것인데, 결론이 다소 거창해져 버렸다.


해설
음, 항간에서 무슨 얘기를 들으셨길래 수인께서 coming out까지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교에서 깨달음과 그 깨달음에 따른 삶의 관계가 궁금하군요. 깨달음과 닦음의 오래 된 논쟁과 비슷한 관계인가요?

제 생각으로는 깨달음과 삶의 모습은 일치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삶의 모습이 이상하다면 그것은 깨달음의 강도가 약한 때문이 아닐까요?
2017-06-04
22:23:24

 


  추천하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