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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우에쓰다 | 나룻배



즐거운 인생
수인  2017-01-31 09:44:32, 조회 : 371, 추천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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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천민과 함께 봉화 제재소에 구경갔다가 오는 길에 산 배 모양의 특이한 자사호(紫沙壺). 모양이 재미있어서 샀는데 ‘자사 효과’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보이차를 주로 마시지만 중국산 자사호나 거름망 같은 번거로운 茶具를 쓰지 않아서 차살림이 담박한 편이다. 차 맛을 좋게 한다는 자사호의 효과도 귓등으로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산 자사호에서 차를 우리니 차맛이 확~~~실하게 다르다. “中品”으로 급수를 매긴 후 거들떠보지 않았던 보이차도 잡맛이 사라져서 거의 上品에 가까운 맛이 난다. 불과(!) 오만원으로 오십만원짜리 물건을 얻었다.  

2. 차생활의 즐거움 중에 하나는 찻잔을 완상하는 것이다. 나는 異性의 美醜에는 그토록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도자기와 같은 예술품의 아름다움에는 둔감한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생각건대 교육과 훈련(반복)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문화융성(제기랄!)”의 근본책은 국민들의 미적 감수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등 - 중등 - 고등학교의 예술교육(음악, 미술, 체육) 시간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일주일에 서 너 시간이면 된다. 문화융성(제기랄!)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삶의 질, 삶의 즐거움이 평생 보장된다.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운가? 영어, 수학의 “時效比”(시간 대비 효과)와는 비교가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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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동창생 소모임이 있었는데 술자리가 파한 후, 그 중 한 ‘아이’가 근처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해서 몰려갔다. 一望無際, 소위 view가 좋은 펜트하우스였는데, 넓은 공간에 층고 또한 높아서 작은 궁전에 온 듯했다. 물론 내장재나 집기도 모두 호화스러웠다.... 그냥 그랬다. 언젠가 도곡동 아파트촌에서 도천선생이 2개 층을 튼 펜트하우스를 가리키면서 간략한 설명을 곁들인 적이 있는데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내가 조금도 부럽지 않으니 저기 사는 사람들한테 미안해....”

정말 요만큼도 부럽지 않았는가? 그건 사실이다. ‘부럽지 않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무덤덤했다. 아무리 집이 좋고 차가 좋은들 어차피 外物인 것이고, 그 外物이 나의 즐거움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萬石지기에는 萬가지 근심이 있다고 하지만, 근심으로 말하자면 노숙자에게도 萬가지 근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萬石꾼이라 해서 萬가지 즐거움을 누리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근심과 즐거움은 모두 ‘내 안’의 살림살이에 달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심오한 종교라고 해도 결국 즐거움을 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만 즐거움에도 여러 수준과 질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부언하면, 종교수행이라는 것도 좀 더 견고하고, 좀 더 지속이고, 좀 더 미묘한 즐거움으로 수렴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예컨대, “즐거움을 구하지 말라”는 가르침조차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즐거움’이라고 했고, 또 기왕이면 좀 더 안정적이고 섬세한 즐거움이 소중한 것이라면, 단 한 번뿐인 삶이라고 믿건, 삶이 연속된다고 믿건,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그러한 즐거움을 더 자주, 더 많이 길어 올리도록 고무해야 할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즐거움을 긷는 두레박은 내 속에 있다.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어도 소화기가 시원찮으면 거름더미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최근에 누리고 있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의 요체도 배를 약간 덜 채워서 늘 식욕을 유지하는데 있다..... 각설하고,        

‘즐거움’이면 됐지 굳이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고, 또 칼로 자르듯이 양자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동암은 윈드서핑을 즐기는데, 돛이 바람을 넉넉하게 안아서 보드가 수면을 살같이 미끄러져 나갈 때의 기분은 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 즐거움을 어찌 정신과 육체로 나누어서 논하겠는가. 각자 형편 되는대로, 취향대로 즐길 일이다. 나로서는 인문학의 즐거움과 예술의 즐거움을 조금 알 뿐인데도 나날이 풍족하다. 그것이 내가 펜트하우스를 부러워하지 않는 까닭이고, 天地神明께 감사하는 까닭이다.


白下
글을 읽으면서 괜히 즐거워지네요. ^^
인문학의 즐거움과 예술의 즐거움!
"아무리 심오한 종교라고 해도 결국 즐거움을 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씀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
2017-01-31
20:29:11

 


완정
저두요.
뭐가 뭐가 중요하다 해도
역시 이 마음 하나
다스림만 못한 거 같습니다.
2017-02-01
14:07:27

 


해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자사호군요. 이것을 쓰면 왜 차 맛이 좋아질까?

그런데 나는 하는 것도 없으면서 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를까?
2017-02-03
01:15:37

 


효산
우~~~
정말 도자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데...
머리를 지어 뜯으며 괴로워 해야 하나?
이 따위 눈알 확 파내어 버려야 하나?
2017-02-03
18:31:53

 


수인
영감쟁이 또 성질 부린다
calm down.... calm down....
2017-02-04
08: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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